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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 | 2017년 04호
암 환자들을 위한 힐링 여행지 - 경주 벚꽃 여행
날씨가 따뜻해지는 계절이 오면 암 질환을 겪었던 환자들도 여행을 많이 떠난다. 벗꽃이 만발한 계절인 봄에는 특히 더할 것이다. 전국의 봄 정취를 즐기면서 고즈넉한 힐링 여행이 가능한 곳을 소개한다. 벗꽃 단지가 풍부하면서도 볼거리가 가득한 경주로 떠나보자.
edit_김영지 사진 제공_경주문화관광 기자 | 2017-06-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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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벚꽃여행의 대표적인 보문단지
호텔과 콘도, 골프장, 놀이시설, 공연장, 미술관 등이 보문호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보문호 주변으로는 호젓 하게 단장된 산책로와 자전거길, 봄이면 흐드러진 벚꽃, 가을이면 알록달록 단풍과 호반의 밤 풍경이 아름 다운 보문관광단지는 관광객들에게 레저와 여행지로서의 즐거움을 주는 국내 제일의 관광휴양지이다. 2000 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역사유적지구’ 의 5개 지구 가운데 하나인 ‘산성 지구’를 포함하고 있으며, 천 년 신라의 역사 문화가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기도 한 역사유적지구이기도 하다.
또한, 황룡사 구층목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높이 82m의 음각 건축물 경주타워와 신라 왕경의 아름다운 숲을 재현해 놓은 왕경숲으로 유명한 ‘경주세계문화엑 스포공원’은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있는 문화테 마파크로서 둘러보기에 좋은 곳이다. 그 외에도 온 가족 놀이시설 경주월드, 선덕여왕 드라마 촬영지인 신라 밀레니엄파크 등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보문관광단 지권에서는 즐거움으로 하루가 부족할 것이다. 보문호를 중심으로 하는 보문관광단지는 주변지역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고급호텔과 콘도, 온천, 골프장, 야외공연장, 놀이시설 등 각종 문화레저시설을 두루 갖춘 국제적인 관광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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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럽고 은은한 맛을 풍기며 사계절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온천형 관광지로 우아하고 정취 있는 전통적 이미지가 창출될 수 있는 내륙형 종합관광휴양단지이며, 한국관광산업의 1번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보문단지는 봄에 피는 벚꽃으로 유명하다. 경주 벚꽃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며 봄의 정취를 맘껏 느껴볼 수 있는 주변경관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기에도 좋고 나무들 사이로 난 산책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보문단지 내의 보문정과 어울러진 벚꽃의 아름다움에 빠져보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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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벗꽃의 화려함을 감상할 수 있는 안압지
문무왕 674년, 삼국을 통일하고 국력이 강해지면서 궁궐도 커지게 되어 신라 왕궁의 별궁이며, 태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안압지 남쪽에 신라 궁인 월성이 있어 이곳까지 자연스럽게 커진 것으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던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안압지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궁 안의 못'으로만 기록되었다.
1980년대‘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본래 이름은 ‘달이 비치는 연못’이란 뜻의‘월지'라고 불렀다. 이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묵객들이 연못을 보며‘화려했던 궁궐은 간데 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고 그 때부터 기러기 '안'자와 오리 '압'자를 써서 ‘안압지’로 불리게 되었다. 안압지를 볼 때 주목할 만한 것은,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총 둘레 1000m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어느 곳에서 보아도 연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신라인들의 세련된 창의성이 돋보이며, 못 안에는 동양의 신선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섬 세 개와 열두 봉우리를 만들었고,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 장치나 배수구 시설 또한 교묘하고 세심하 다. 또한, 신라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기와류, 화려한 금속 공예품 들도 주목할 만하지만, 나무배와 나무로 만든 각종 건축 부자재, 나무편을 얇게 깎아 글을 기록한 목간 등도 매우 귀중한 생활 유물이다. 이 곳 안압지에서 출토 된 유물만 무려 3만여 점으로, 왕실과 귀족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였던 실생활 용품이 대부분인데, 예술성이 뛰어난 명품 700여 점을 선별하여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하고 있어 단일 유적지인 안압지에서 얼마나 대량으로 유물이 출토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안압지에는 현재 연못과 세 개의 건물이 복원되어 있지만, 발굴 당시 이곳에서, 무려 스물여섯 곳의 건물터가 발견되었는데 앞쪽에 보이는 주춧돌은 모두, 건물 들이 있었던 자리로, 현재 복원된 세 개의 건물은 안압지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 다고 한다.
안압지 안에는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용왕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안압지를 발굴 할 때 발견 된 ‘심신용왕’ 이란 글씨가 새겨진 토기가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심신용왕이란,‘새로운 제물을 용왕께서 굽어 살펴 주소 서'라는 뜻으로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도 이용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연못 바닥에 서는 무덤 등에서 출토되는 껴묻거리와 달리, 각종 토기와 특이한 기와, 나무로 만든 빗, 글씨가 쓰인 나뭇조각 등의 생활용품들이 많이 발굴되어 통일신라시대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선도 발견되었는데, 이 목선은 배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안압지 서쪽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가 있는데, 이곳에는 백제의 조경기술 녹아 있다. 백제는 일찍이 연못을 꾸미는 조경기술이 발달해 부여의‘궁남지'를 비롯해 많은 연못들을 만들었다. 안압지에도 백제의 조경기술이 접목되어 신라 속에 고구려, 백제의 문화가 녹아들면서 지금처럼 아름답고 과학적인 연못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안압지의 물길이 시작되는 입수구는 물을 끌어들이는 장치인데, 북동쪽에 있는 하천에서 물을 끌어와서, 이 장치를 거쳐 안압지로 들어간다. 마치 거북이를 음각한 것 같은 두 개의 수조가 아래위로 위치해 있는데, 이런 구조는 물에 섞여 있는 자갈이나 모래를 걸러내기 위한 것이다. 물은 수조를 지나 안압지 안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는데, 낙하 지점에 판판한 돌을 깔아서, 바닥의 침식과 구정물이 생기는 것을 방지 했다. 그리고 입수구 근처에 작은 인공 섬은 입수구를 통해 들어온 물의 흐름을 느리게 만들어서, 연못의 침식을 막아주고 물이 자연스럽게 순환 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연못의 반대쪽에는 물을 배출하는 배수구가 있고 배수구에는 3개의 구멍이 세로로 나 있는데, 이 구멍에 나무마개를 끼워 수위를 조절했다. 이렇게, 안압지는 세심한 부분까지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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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영웅 김유신 사적 묘로 가는 길의 벚꽃
김유신의 무덤은, 흙이 내려앉는 걸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돌을 두르고 그돌 위에 시간과 방향을 상징하는 열두 마리의 동물을 조각 했는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왕릉 형식을 갖추고 있다. 김유신은 살아서는 왕이 아니었 지만 죽은 후에 그의 공을 인정받고 왕으로 추존 받아 '흥무대왕'이라 불렸고 그래서 왕릉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
김유신은 신라의 정통귀족이 아닌 금관가야 왕족이었다. 신라 왕족 김춘추와 의기투합하고 자신의 동생 문희를 춘추에게 시집보내면서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고, 혈연으로 맺어진 춘추와 함께 수많은 전장에서 공을 세우 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큰 공을 세워 신라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 다. 능 앞쪽에는 두개의 묘비 중 하나는 태대각간이라는 직위를 새긴 비석이고 다른 하나는 흥무대왕의 비석이다.
무덤은 지름이 30m에 달하는 커다란 규모이며, 봉분은 둥근 모양이다. 봉분 아래에는 둘레돌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는 돌난간을 둘렀는데, 둘레돌은 조각이 없는 것과 12지신상을 조각한 것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12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 모양이다. 조각의 깊이는 얕지만 대단히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처럼 무덤 주위의 둘레돌에 12지신상을 조각하는 것은 통일신라 이후에 보이는 무덤양식으로, 성덕왕릉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유신이 죽자 흥덕왕은 그를 흥무대왕으로 받들고, 왕릉의 예를 갖춰 무덤을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삼국사기>에는 김유 신이 죽자 문무왕이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그의 공덕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그 비는 전하지 않고, 조선시대에 경주부윤이 세운 비만 남아있다. 김유신묘 가는 길에는 벚꽃 도로가 있다. 가로수처럼 세워져 있는 벚꽃은 밤에 아름다운 야경도 볼 수 있으며 경주 벛꽃 여행의 새로운 곳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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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암매거진 2017년 04월
지난 THEC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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