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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활동을 수행하는 단체의 증가
99년말 국회를 통과해 2000년 4월부터 시행중인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따라 영리가 아닌 공익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민간단체’의 경우는 2001년 3,451개에서 2014년 12,252개로 3.6배 증가하였다. 또한, 사회복지, 종교, 교육, 장학, 의료 등 사회일반의 이익을 목적으로 민법 또는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 법인인 ‘공익법인’의 경우에도 2001년 11,063개에서 2014년 29,732개로 2.7배 증가하였다. 즉, 사회가 역동적이고 복잡해짐에 따라 정부 혹은 개인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수행하는 단체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비영리단체가 증가 vs 기부자의 증가
비영리민간단체, 공익법인이 3.6배, 2.7배 증가하는 동안 개인과 법인의 기부금 합계는 4.4조원에서 12.0조원으로 2.7배 증가하였다. 비영리단체의 수입은 회비수입, 수익사업수입 등도 있지만 기부금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1인당 국민총소득이 2001년 11,180달러에서 2014년 28,070 달러로 2.5배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기부금의 증가폭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것은 불안요소가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부 하지 않음’의 비중이 점차 증가하여 2015년에는 70%에 이른다.
같은 기간 13세 이상 인구 1인당 평균 현금기부액은 58,000원 에서 85,000원으로 약 1.5배 증가하였다. 즉, 기부활동이 필요 하다는 인식이 확대되어 기부인구가 크게 증가했다고 보다는 기부하던 사람들의 기부액이 증가했다라고 볼 수 있다.
선택 과잉의 시대 속 비영리단체
비영리단체들이 증가하면서 제3섹터 내에서도 선택 과잉 시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비영리단체의 증가는 모금을 위한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그래서 매스미디어 뿐 아니라 SNS를 통한 홍보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 고, 예전보다 거리에서 회원을 모집하거나 모금을 하는 거리모집도 증가하였다. 즉, 비영리단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노출이 많이 증가한 것이다. 그렇지만 증가한 홍보만큼 모금효과나 기부에 대한 인식도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홍보비 대비 모금 액의 가성비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불만이 많아지고 만족도는 떨어진다. 선택에 따른 리스크와 후회가 커지지 때문에 실망할 가능성도 커지기 때 문이다. 그래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햄릿증후군’, ‘결정장애’라고 하는데 이것이 선택 과잉 시대의 부작용이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이를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 현대사회가 낳은 새로운 정신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비영리 단체도 선택 과잉의 시대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선택 과잉의 시대에서 사람들의 대처 유형
정보가 충분해 지면서 이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명한 소비자들로써 이들은 선택을 즐기면서 산업의 생태계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이 경우 크게 두 가지 패턴을 보인다.
첫째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선택 자체를 포기하는 유형이다.
구두를 사려고 상점에 들어갔는데 좋은 상품이 너무 많은 경우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거야!’, ‘생각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네. 나중에 세일할 때 와야지’라며 선택의 포기 혹은 연기에 대해서 합리화를 하는 유형이다.
둘째는 더 의존적인 선택을 하는 유형이다.
자기 기준에 따라 선택하기 보다는 전문가 의견, 기사내용, 인터 넷의 사용 후기 등을 참고하는 유형이다. 전문가가 좋은 상품을 추천해주는 형식의 쇼핑몰인 ‘큐레이션 커머스’도 이 유형을 공략한 전략이다. 그렇지만 이 유형도 전문가의 말, 기사, 사용 후기가 광고와 결합되어 진짜를 가려내야 하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결정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
결정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선택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말로서 의미와 가치를 명확히 설명하여 선택의 가짓수를 줄여 나가야 하며, 선택에 대한 충분한 가치가 선택자에게 전달되어 좋은 경험으로 남을수 있는 순환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는 ‘큐레이션 커머스’처럼 믿음직한 전문가가 붙어서 선택을 거의 대신해 주는 방법이다. 믿음을 위해서는 투명성 있는 피드 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리하면, 의미있는 일임을 명확히 하고, 정확한 피드백을 주고, 개인의 경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 과잉의 시대에서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
2015년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 를 묻는 질문에 55%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를 꼽았다. ‘기부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는 15%, ‘기부 단체를 믿을 수가 없어서’ 는 11%로 그 뒤를 이었다. 설문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불황이므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과연 그럴까? 호황이 되면 기부가 늘어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여기서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 질문과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것’의 질문은 일정 부분 쌍을 이루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기부단체를 믿을 수 없어서’ 11%와 ‘기부 단체 자금운영의 투명성 강화’ 21%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렇지만 각 질문의 첫 번째 응답인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와 ‘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의 모범적 기부’는 해석이 필요하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실제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기부 행위에 대한 가치나 의미를 잘 모르겠다’라고 보는 것이 자연 스럽다. 선택할 때 전문가의 추천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의 기부여부가 기부 행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 ‘기부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 70%
‘지도층과 부유층의 모범적 기부’ + ‘나눔에 대한 인식 개선’ = 70%
즉, 이런 저런 답변을 하였지만 70%는 자신의 기준에서 보았을때 기부 행위가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이다. 비영리단체는 여러 매체를 통해서 가치 있는 행위라고 선전을 하고 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는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후원자가 아닌 비영리단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주도적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
선택 과잉 시대의 비영리단체의 대응방안
의료계에도 의료공급이 부족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 때는 병원이 있기만 해도 환자가 찾아오는 시대였다. 전략, 고객관리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렇 지만 지금은 공급이 과잉인 시대가 되었고, 환자들이 선택할 수있는 정보도 증가하였다. 많은 병원들이 고객만족을 위해서, 환자경험을 위해서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혁신하기 시작했다.
제3섹터 역시 마찬가지이다. 좋은 일을 한다는 거대한 명분만으로 기부가 잘 되던 시대는 지났다. 단체의 의미 있는 일이 후원하는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 되어야 한다. 즉, 의미 있는 프로 그램을 만들고, 가장 적합한 후원자를 찾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후원자에게 접근하며, 정확하고 투명한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고받은 다양한 경험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부가 좀 더 활성화가 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후원자 입장에서 선택의 어려움(필요성)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비영리단체는 좀 더 엄밀한 관리 (management)가 필요하다.
<대한암협회 이사>
-대한적십자사 재무관리실장 안근용